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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식사로
사랑과 희망을 전하다
김종국 토마스의 집 원장신부

“사회가 어려움에 처하면
소외계층은 더욱 내몰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결국 똑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하는
사회가 오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어려움에 처하면
소외계층은 더욱 내몰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결국 똑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하는
사회가 오면 좋겠습니다.”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8평 남짓의 무료급식소가 있다. 점심시간에 장사진을 이루는 이곳은 바로 행려자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제공하는 ‘토마스의 집’이다. 자신의 세례명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이름을 따와 30년 넘게 토마스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국 원장신부를 만났다.

김혜원

사진 신규철

사랑의 급식소 토마스의 집

지구 아이콘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828-1

지구 아이콘11:00~12:40(목·일요일 휴무)

설립

1993212

지구 아이콘

하루 방문 수

350

지구 아이콘

‘토마스의 집’은 어떤 곳인가요?

가장 인간다운 식사를 대접하는 무료급식소입니다. 30년 남짓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 없이 자발적 성금만으로 점심식사를 제공해왔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에 500명 정도가 방문하시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350명 정도가 찾아오세요. 누구나 따뜻하고 편안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봉사자들이 한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토마스의 집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0년대 초반에 개봉동 성당에서 주임신부로 생활하며 영등포교도소의 교정사목1을 담당했습니다. 그 무렵 신자들이 무료 급식소를 운영해 달라고 제게 부탁하더군요. 사연인즉,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들이 그곳에서 밥을 먹곤 했답니다. 그런데 급식소를 운영하던 사랑의 선교회 수사들이 방문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운영을 접었다는 거예요. 주임신부 일이 많았기에 며칠간 고민하다가 현장을 직접 방문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렇다 할 시설은커녕 쓰레기만 잔뜩 쌓여 있었어요. 9개월이 넘도록 관리자 없이 방치됐던 곳이니 별수 있었겠습니까. 현장을 보자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면서 ‘어려운 이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운영을 결심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토마스의 집을 열기가 쉽지 않으셨겠습니다.

막막하기 그지없었죠.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치우기 위해 리어카로 무려 아홉 번을 오갔습니다. 건물 주인이 급식 봉사를 허락해줘서 다행이었어요. 먼저 성당에서 모은 기부금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했습니다. 초기에는 후원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비를 더해 배식에 필요한 물품을 장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93년 2월 토마스의 집을 열었습니다. 매일 120명 정도가 오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초기에는 다른 어려움도 겪으셨을 텐데요.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발목을 잡았어요. 월세를 몇 달 동안 내지 못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매일 식비 부족에 시달리던 어느 날에는 “주님, 쌀!” 하고 잠꼬대를 하며 깨기도 했습니다.
심정적으로 힘든 일들도 있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취지가 무색하게 좋지 않은 일들도 벌어졌습니다. 식사하러 오신 분들 가운데 거리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은 다반사였고, 먼저 배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다가 싸움이 나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거리가 시끄러워지니 주변 상인에게 눈총을 받았죠. ‘왜 노숙인을 불러들여서 거리를 망치냐’면서요. 멱살도 여러 차례 잡혔습니다. 그러나 제 세례명을 걸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토마스의 집이 지금의 자리에 정착하기까지 영등포구에서만 세 번 이사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처음에 자리한 곳에서는 몸을 가누기 어려운 분들을 씻겨드렸어요. 작게나마 씻을 공간이 있었거든요. 한 번 목욕시키고 나면 비누가 반이나 사라지곤 했는데 힘든 줄도 몰랐어요. 두 번째 장소에서는 여의도성모병원 의료진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병원 갈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을 진료하고 약을 처방해드렸는데, 점심식사보다 왕진을 더 좋아해주시더라고요.

토마스의 집에 찾아오시는 분들을 특별한 호칭으로 부르시던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인데요. 힘든 상황이 닥칠 때면 토마스의 집을 열겠다고 다짐한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한 끼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밥상이 간절한 법이잖아요.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며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고 싶었습니다. 다만 시혜적인 시선이 아니라 동등한 눈높이로 그들을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인간이니까요. 그래서 토마스의 집을 방문하시는 분을 ‘우리 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에서 ‘주’ 자를 빼고요.
겨우 호칭이 바뀌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많은 것이 달라지더군요. 아무데나 침을 뱉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싸워대던 사람들이 한결 부드러워진 거예요. 함께 식사하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로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토마스의 집이 문을 연 지 어느덧 32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봉사에 임해오셨는지요?

우리 님들은 각자 다른 사연으로 토마스의 집을 방문합니다. 슬픔, 분노, 설움, 비참함, 수치심이 뒤섞여 얼핏 겉으로는 초라한 행색이에요. 하지만 저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오직 한 인간으로서 편안하게 식사하시도록 대접해드리는 데만 집중합니다. 이런 인간적인 존중이 토마스의 집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덕분에 멀리서도 찾아와주시는 것 같아요.
식사를 마친 뒤에 말간 미소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 미소 속에서 저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봉사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운영 상황은 어떻습니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토마스의 집을 찾는 분들이 확대됐다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이용자 대다수가 행려자였는데, 이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도 찾아오세요. 혼자 사시거나 차상위 계층에 속하시는 노인분들이 많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물가가 갑절 정도 오른 반면 후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본인이 여유로워야 주변도 둘러보게 되는데 워낙 살기가 팍팍하잖아요. 그래도 명절과 연말연시 무렵에는 평소보다 후원이 많은 편입니다. 월세와 공과금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종종 쌀값마저 위태로울 때가 있는데, 다행스럽게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십니다.

말씀하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의 집이 오늘날까지 운영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하느님의 도우심이죠. 제가 신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언젠가 “주님, 쌀!”이라고 잠꼬대한 적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초창기의 악조건에서는 그나마 벗어났습니다.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났거든요. 이 자리를 빌려 우리 박경옥 데레사 총무, 봉사자 정희일 할머님을 비롯해 수많은 봉사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래 고생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이들이에요. 오직 보람만으로 정성을 다하는 우리 봉사자들 덕분에 늘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LG, 린나이 등에서 다양한 물품을 기부해온 가운데 나눔의 온기를 현장에서 전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2024년 9월에 한경협 류진 회장과 임직원 20여 명이 토마스의 집에서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토마스의 집과 함께하는 든든한 이웃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토마스의 집에 전달되는 모든 것이 큰 힘이 됩니다. 현물 기부와 배식 봉사는 물론이고, 응원 한마디에도 엄청난 사랑과 나눔의 온기가 있어요. 소외계층에 관심을 두고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 덕분에 토마스의 집이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발걸음에 감사드립니다. 최초의 발걸음이 계속해서 새로운 발걸음을 독려하고, 그렇게 선순환이 이어지며 수많은 발걸음이 토마스의 집을 향해왔어요. 이걸 ‘발걸음의 힘’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신부님께서 꿈꾸시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회가 어려움에 처하면 소외계층은 더욱 내몰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결국 똑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하는 사회가 오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기회에 따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생활해온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생이 다할 때까지 토마스의 집을 지켜내는 것이 목표이자 소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