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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의 미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회색 코뿔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세계는 반도체 전쟁에 한창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은 반도체 산업을 미래 국가 경쟁력의 키스톤으로 보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이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정책투자 지원의 취약으로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위기에 처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에 회색 코뿔소가 등장한 현재, 역대 산업부 장관들과 함께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김혜원

사진 김동열

이윤호 이미지

이윤호

  • 前 지식경제부 장관(2008~2009)
윤상직 이미지

윤상직

  • 前 산업통상자원부 장관(2013~2016)
성윤모 이미지

성윤모

  • 前 산업통상자원부 장관(2018~2021)
이창양 이미지

이창양

  • 前 산업통상자원부 장관(2022~2023)
이종호 이미지

이종호

  • 前 과학기술통신부 장관(2022~2024)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이윤호 현재 우리 반도체 산업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는 한 제품, 한 산업, 나아가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한국은 메모리 쪽에서는 고지를 선점한 반면, 비메모리 쪽은 3%도 선점하지 못했습니다. AI 시대의 비메모리 반도체 쪽에서는 더욱 취약하죠.
따라서 이 기술 패권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정부 지원이 필요합니다. 미국, 일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에서도 청사진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나라는 보조금 지급에 주저합니다. 대기업에 대한 혜택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거죠. 지금이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국가 전략산업이자 안보와 직결되는 산업으로서 반도체 관련 지원책의 폭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요. 직접보조금, 금융 지원, 세제 지원 등 방법은 다양할 겁니다. 반도체에 대한 지원은 한시가 시급하고 또 획기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성윤모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고민할 때는 타 국가에 비해 보다 더 빠르게,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좋은 지원을 전폭적으로 시행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257억달러를 지원하며, 중국은 이미 6,500억위안을 지원한 데 이어 2024년도에는 3,000억위안 이상을 반도체 지원 기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본조차도 40%, 50%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세액공제입니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 15%, 연구 개발에 30~40% 일몰 조항이 적용되고 있어요.

반도체 산업의 에너지 인프라

윤상직 반도체 산업은 굉장히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합니다. AI 시대에 접어든 요즘, AI 반도체 기술이 새롭게 떠오르며 전력 에너지 수요는 말 그대로 폭증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 하나에 필요한 전력이 10기가와트입니다.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전력 설비가 필요해요. 그리고 생태계가 조성되면 거기에서 전력 5기가와트를 쓴다고 하더라고요. 향후 2029년까지 AI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를 추산했더니 49기가와트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모두 합치면 64기가와트에 육박하고요. 현재 국내 전력 설비가 120기가와트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대책이 필요합니다. 안정적인 전력 없이는 반도체 산업 등 우리나라 경제에 위기가 도래할 겁니다.


이창양 에너지 문제는 향후 산업 발전과 세계 강국 순위 측면의 핵심이기 때문에 상당한 경각심을 가지고 어젠다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부와 산업계가 가지는 경각심에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그 간극 때문에 무언가를 추진하기에 어려움이 있고요. AI 강국이 되고 AI 기반의 디지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력 기반의 강화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전력 기반을 잘 강화한다면 글로벌 산업 순위에서도 선두에 설 기회가 될 테고요. 그런 면에서 전력 문제는 최대한 노력해야 할 이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부장 산업

성윤모 소부장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반도체 패권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반도체 산업의 수요와 공급, 또 지정학적인 요인을 두루 고려해서요. 1980년대 미일 반도체 경쟁 이후 지금이 바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구조적인 변화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미일 반도체 경쟁으로 일본이 저지됐고, 시스템 반도체에서 팹리스(Fabless)가 분화된 결과 대만이 떠오르고 한국이 D램의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부상을 수출 통제하면서 별도의 공급망을 형성하려는 정치적인 요인도 있고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AI가 폭증하고, AI 반도체 등 기술 혁신과 함께 각국이 수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대전환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30년간 메모리 분야는 물론 비메모리 분야의 파운드리(Foundry)에서 잘하지 않았습니까. 잘하는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의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새로운 수요가 폭증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팹리스 파트와 공급망을 안정화할 수 있는 소부장 등을 확대하는 것으로 기본 방향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부에서 민간에 대한 혁신적인 지원 제도를 하루빨리 갖춰야 할 것이고요. 둘째로, 반도체 산업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합니다. 산업 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한국은 30년간 반도체 산업 강국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D램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의 소부장 산업은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소부장 산업 육성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팹리스와 비슷한 소부장 산업의 특성은 막대한 자본과 오랜 기간입니다. 장기간에 걸쳐 대량의 자본이 R&D에 투자돼야 하므로 시장 경제에 의해 자발적으로 해서는 시장의 신규 진입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이 30년간 D램 산업에서 경쟁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소부장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죠. 적극적인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민간과 정부,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새로운 소부장 기업 육성이 가능합니다.


이종호 팹리스와 관련해서 짧게 말씀드리자면, 지금까지 꾸준히 세운 목표는 ‘3%의 벽을 넘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관련해서 과기부에서 여러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경쟁국과 차별화되는 전략을 추진하고자 고민해왔는데요. 전반적으로 반도체 산업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구체적이고 탄력적인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창양 우리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PC 시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모바일 시대가 왔고, 최근에는 AI 시대가 도래했죠. 각국 정부가 반도체 전쟁에 발을 들였습니다.
한국은 메모리 쪽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요. 메모리 분야의 강력한 경쟁력에 대해서 세 가지 도전 과제를 제시할까 합니다.
첫째, AI 시대에 요구되는 메모리를 공급할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HBM 기술이 선두에 있습니다.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하고요. 둘째, 미세공정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미세공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기업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상당 부분 불확실성이 있으므로 정부의 R&D가 여기에 집중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업들이 차세대,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추구할 때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세공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칩렛(Chiplet) 같은 차세대 패키징 기술이 중요한데요. 패키징 중견·중소기업에 직접적인 보조금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셋째, YMTC 등의 중국 기업이 10% 수준으로 추격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기업은 한 세대 정도 뒤처진 DDR4 수준의 범용 메모리를 만들고 있지만,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생산 경험을 축적한다면 앞으로 기술력이 상당히 진보할 수도 있습니다. 범용 메모리 시장을 중국이 잠식한다면 우리 기업의 매출이 하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결국 소자 기술과 첨단 패키징에 대한 R&D 지원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반도체 분야의 R&D 투자가 정부든 기업이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R&D 활동에 대한 직접보조금도 필요할 것으로 보여요.
다음으로는 최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파운드리입니다. 대만의 국영기업 TSMC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며 독과점하는 상황이죠. TSMC는 35년이 넘는 업력이 있고 초기 투자가 많았기 때문에 기술의 상당 부분을 쌓았고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의 업력은 10년, 그러니까 TSMC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생산 능력이나 경험 축적 속도도 마찬가지로 차이가 심합니다. TSMC는 미세공정 기술이 뛰어나고, 비즈니스 모델이 좋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점차 기술력을 더하고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준다면 우리나라도 후발주자로서 좋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 분야에서는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주문형·맞춤형 AI 반도체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에 직접보조금, R&D, 인프라 등의 정부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는 인력이 있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기업의 경영 역량이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가 합쳐져야만 우리 반도체 산업이 지금처럼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윤호 반도체 생태계를 키울 만한 전담 조직이 정부에 있으면 어떨까요.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는 패권 경쟁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정부의 대담한 정책과 강력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D 예산과 인력

이종호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R&D 예산도 중요합니다. 2025년에는 12% 정도가 반도체에 배정됐는데요. 계속적으로 연구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러 장관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반도체 경쟁을 타개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우리의 우려 속에서 AI는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반도체 회사가 세계 시장을 흔들 기회 말이죠. 산·학·연·관이 협력을 잘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산업 측면에서는 플러스 요인이 많은데, 부족한 점이 하나 있다면 앞서 언급된 바 있는 전력 문제입니다. 2024년 3월 EU 13개국이 뉴클리어 서밋에서 ‘SMR 산업 동맹’을 출범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첨단 반도체, 4세대 SMR 등에 대한 2025년도 예산을 증가했습니다. AI를 접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저전력 AI 반도체를 만들어서 산업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이죠. 이를 위해 여러 정책이 준비되고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겠고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인력입니다. 많이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인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2024년 3월 과기부는 국가 나노팹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한곳에 모아 팹 이용자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아팹’(MOAFAB) 서비스를 개시했습니다. 함께 팹의 퀄리티를 높이고 연결하는 등 우리가 구축한 인프라에서 뛰어난 인재가 발굴되고, 그 인재가 우리 산업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해 우려스러운 기사가 많이 나오는 줄로 압니다.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줄 방안을 고민해야 하고, 국민 차원에서도 기업에 힘을 모아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