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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와 에네아스,
영국 오페라의 탄생과 사회 환경

안정순 음악평론가

“프랑스인들이 륄리와 라모에게, 독일인들이 헨델과 바흐에게,
이탈리아인들이 팔레스트리나와 페르골레지에게 떠들썩하게 환호하듯, 영국인들은 퍼셀에게 환호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밀턴의 서사시, 로크의 형이상학, 뉴턴의 수학과 철학과 마찬가지로 퍼셀의 음악은 영국의 자존심이다.” - 찰스 버니(Charles Burney), 「일반 음악사』 중

영국의 첫 오페라,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의 <디도와 에네아스>(Dido and Aeneas)는 영국 바로크 오페라의 대표작이자 영국 오페라의 자존심으로 꼽힌다. 17세기 영국에서는 부수음악을 곁들인 세미 오페라가 많았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비교해볼 만한 정통 오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배경에서 <디도와 에네아스>는 사실상 영국의 첫 오페라로, 이후 영국 음악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특히 3막에 등장하는 디도의 아리아 '내가 땅 속에 묻힐 때'(When I Am Laid in Earth)는 그라운드 베이스를 사용한 라멘토(lament)의 정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퍼셀 이후 엘가(Edward Elgar),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홀스트(Gustav Holst), 브리튼(Benjamin Britten)과 같은 영국 작곡가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퍼셀은 오랫동안 영국 음악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첫 오페라는 퍼셀 사후 200년이나 지나 1895년이 되어서야 현대화된 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1999년에 산 마리노 공화국에서 발행한 오페라 400주년 기념 우표 사진

1999년에 산 마리노 공화국에서 발행한 오페라 400주년 기념 우표.
작곡가 헨리 퍼셀과 <디도와 에네아스>를 상징하는 그림이 담겨 있다.

1999년에 산 마리노 공화국에서 발행한 오페라 400주년 기념 우표. 작곡가 헨리 퍼셀과 <디도와 에네아스>를 상징하는 그림이 담겨 있다.

초연 연도를 둘러싼 논쟁

<디도와 에네아스>는 정치적 격변기인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의 치세에 걸쳐 탄생한 작품이다. 그러나 초연 연도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1689년 초연설과 1684년 초연설이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는 단순한 연대기적 문제가 아니다. 1688년 명예혁명은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키고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를 공동 통치자로 세우며, 절대군주제를 종식시키고 헌법적 군주제를 확립했다. 이때부터 군주의 권력은 의회에 의해 크게 제한되었다.

1689년 초연설은 전통적인 관점으로 이 작품이 런던 첼시의 조시아 프리스턴 여학교에서 교육 목적으로 상연되었다는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영국 최초의 오페라는 왕권이 약화되고 의회 중심의 정치 체제가 확립되는 가운데 탄생한 셈이다.

반면, 1684년 초연설에 따르면 이 오페라는 찰스 2세의 치세에서 왕정을 찬양하는 궁정 오락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찰스 2세가 복위된 이후 영국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궁정에서 프랑스식 문화를 선호했으며, 왕립 악단마저 프랑스 음악가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 주장대로라면 <디도와 에네아스>는 찰스 2세의 궁정에서 이탈리아•프랑스•영국의 요소를 혼합한 오페라로, 당시 유럽에서 영국이 문화적으로 뒤처지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작품이었을 것이다.

복고왕정

1684년 초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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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오락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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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와 에네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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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군주제

1689년 초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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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목적

절대왕정에서 입헌 군주제로의 정치적 격변기, 그리고 오페라의 탄생

오페라의 탄생은 절대왕정 시대의 정치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처음 오페라가 탄생한 이후, 프랑스•독일•영국 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수용하고 발전시켰다. 프랑스의 '서정비극', 영국의 '마스크', 독일의 '징슈필'은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에 각국의 특성을 더한 장르였다. 오페라는 대규모 자본과 후원을 필요로 했고, 이를 감당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의 궁정에서 주로 상연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처럼 왕의 권력이 절대적인 곳에서 오페라는 왕과 귀족들의 유흥물로 기능하며 발전해나갔다.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이 지젝(Slavoj tizek)은 오페라가 태어날 때 귀족과 군주들이 오페라의 요람을 흔들었다고 표현하며, 오페라를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디도와 에네아스> 역시 절대주의의 시대에 태어난 작품으로, 그 초연 연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음악사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왕정과 입헌 군주제 사이의 정치적 변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헨리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는 영국 오페라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태어난 예술 작품이다. 이 오페라의 초연 연도를 둘러싼 논쟁은 그 작품이 왕정 복고 시기의 절대군주제에 기반한 궁정 오락인지, 아니면 명예혁명 이후 의회 중심 정치 체제 속에서 태어난 교육적 목적의 작품인지를 두고 중요한 정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명예 혁명 이후 영국은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고, 공공 연주회장이 성행하며 음악 소비의 주체가 빠르게 중산층으로 이동한다. <디도와 에네아스>는 절대주의와 중산층으로의 자본 이동이라는 두 가지 사회적 흐름 속에서 오페라의 탄생과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