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경제 원칙 흔드는 상법 개정안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상법 개정인가
일각에서 국내 증시 밸류업과 관련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겠다는 것. 문제는 해당 개정안이 기업의 경영권에 족쇄를 채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글 김혜원
정철
-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총괄대표(CRO) 겸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2018~2020)
-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통상자문관(2016~2017)
- 한국무역협회 수석이코노미스트(2009~2012)
Q. 한경협 등은 개정안이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는데, 자세히 설명해달라.
A.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를 괴롭힌다면 자사주 소각, 자산 매각, 배당 확대 등의 단기적 이익 추구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이미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었다.1 이런 상황에서 상법이 개정되면 공격 세력에게 더없이 좋은 공격 수단을 만들어줄 것이다.
Q. 현행법상 일반주주 보호가 취약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현행법에도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각종 장치, 이사 충실의무 위반이나 대주주 지배권 남용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이 다양하다.2 설령 소수주주 보호가 미흡하다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지, 기업 활동의 기본 원칙인 이사의 충실의무를 무리하게 개정해서는 안 된다.
Q. 상법 개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3 해소의 이정표 역할을 할 상징적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A. 그 반대라고 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와 높은 반기업 정서로 인해 기업이 국내에 투자할 환경이 제도적으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단순히 이사 충실의무 확대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못한다. 기업의 기반과 성과가 좋아야 지속 가능한 주주 가치 제고가 가능하지, 좋지 않은 경영 환경을 그대로 두고 상법만 개정한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리는 만무하지 않겠나.
Q. 일각에서는 한경협 등이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을 별개 개념으로 병렬적으로 규정한 해외 입법사례가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위배된다”라고 주장했다며 비판하는데.
A.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 외에 주주까지 새로 추가해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의 해외 입법례가 없다고 설명한 것이다.
한경협 주장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이나 모범 회사법에 '주주'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 상법 개정안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 제102조(b)는 '정관에 포함 가능한 사항, 즉 선택적 기재 사항'을 열거한 것이며,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자율적으로 정관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에 관해 면책을 불허한다'는 규정을 넣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 모범 회사법 제8.31조(a) 역시 주주와 회사가 병기되기는 했으나, 핵심 내용은 이사의 책임 한도를 설정한 규정이다. 결코 '주주에 대한 이사 책임'을 강행 규정으로 넣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 국가 법률에서 이사 충실의무가 주주에 대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Q. 결국 주주 보호와 경영 자율권 보장 사이에서 합리적 균형점을 찾는 일이 핵심인 듯하다.
A. 주주의 바람은 기업 가치 제고를 통한 주식 수익률 상승, 배당 증가 등일 것이다. 기업 가치가 제고되려면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기업문화와 법·제도가 중요하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조선업과 자동차 산업 진출, 삼성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산업 등은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해내는 기업가의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1983년 최초 선언 이후 1987년까지 누적적자가 1,400억원이나 발생했다. 이때 주주나 정부가 이를 문제로 삼았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업과 이해관계를 맺는 대상은 주주, 근로자, 채권자에 지역사회까지 다양하다. 소수주주 보호나 기업 밸류업 정책이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자칫 주주 보호만 강조할 경우 기업과 연결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침해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마다 역점을 둬야 할 포인트가 다르다. 어떤 기업은 주주 환원보다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확대가 시급할 수 있다. 기업 전체를 어느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정책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기업가들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제도적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 1. 영국의 글로벌 기업 거버넌스 리서치 업체인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Diligent Market Intelligence)에 따르면 2020년 10개에 불과했던 행동주의 펀드 피공격 한국 기업이 2022년에 49곳으로 약 5배 급증했다.
- 2.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시 주주 보호,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합병 반대주주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주주의 대표소송, 이사에 대한 해임청구 등
- 3. 한국 증시 저평가